<작가노트>

위안부는 역사 속 실재했던 사건이지만, 책임지는 이가 없다는 점을 표현했다. 비단과 명주실이 함께 놓여 ‘함’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당시의 역사가 끊임없이 나열되는 함이지만, 함진아비 또는 내용물도 실체가 명확하지 않아 보낸 이가 명확하지 않다. 받아보는 이도 누구인지 알 길이 없다. 위안부 소녀들이 받고 싶었던 함은 아닐 것이다.

위안부의 시선이 보이는 듯하는 가운데 번득이는 미디어의 잔광이 새어나오지만 실제 속은 공허하다. 텅 빈 함 바닥에는 반복되는 위안부 역사의 플래시백만이 있을 뿐이다. 디지털 화면 속에서 빠르게 나타남과 사라짐을 반복하는 사진들은 관객들에게 자료를 능동적으로 훑어볼 여지를 주지도 않거니와, 그것들을 소화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실재했던 사건의 나열이 담긴 함을 보낸 이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역사는 왜곡되고 은폐되어 사실이 무엇인지 모호하다. 만행의 역사로 채워진 함은 분명 우리 눈 앞에 존재하는데, 보낸 이도 받을 이도 없는 듯하다. 우리는 주인없는 함을 그저 불편하게 관망할 뿐인 관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Hamjinabi

2019

Renticular Panel, 1-Channel Video, Fabric

100 X 70 X 50 Centimeters